‘어릴 적 산동네에서 변변한 놀이기구 하나 없이도 신나게 뛰어놀았는데 그때의 자유로웠던 기억이 이후 내 삶의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은 커서 어떤 추억을 갖고 살아가게 될까 싶었다.’
위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저드(hazard)고 또 하나는 리스크(risk)다.
놀이터에 깨진 병조각이 있거나 난간이 녹슬어서 아이들이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해저드는 당연히 미리 해소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리스크에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놀다가 긁히고 까이면서 조금씩 자주 다쳐야 크게 다치지 않는다. 예방주사와 같은 이치다. 아이들에게는 멍들 권리가 있다. 그러면서 다치지 않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오히려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전하게만 자란 아이가 위험이 뭔지 배우지 못해 더 위험하다.
국내에 7만여 개의 놀이터가 있지만 어딜가나 ‘조합놀이대 1대, 그네 시소 2대, 탄성 고무매트 바닥’ 3종 세트의 ‘재미없고 지루한 놀이터’로 획일화되고 있다.놀이터 두 가지의 덕목 중 ‘안전’만 강조하다 보니 ‘도전과 모험’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런 지루함과 실증이 더 큰 사고를 부른다. 놀이터에 한 번만이라도 가보라. “절대 거꾸로 타지 마시오” 라는 펫말 옆에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은 거꾸로 타고 있다. 안전하다는 놀이터가 실제로는 훨씬 더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독일도 오랜 기간의 조사 끝에 ‘안전한 놀이터가 가장 위험한 놀이터’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기심 유발이 안 되니 딴짓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늘더라는 거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놀이터의 주인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바로 이한 명제 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지금의 놀이터는 어른들이 기획하고 만들었다 실제 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의견은 전혀 묻지 않은 채 이런 놀이기구를 좋아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하지만 붙박이식 놀이기구 위주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외면만 받을 뿐이다. 서울의 한 놀이터에 가봤더니 수억원짜리 놀이기구엔 아무도 없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이터 구석에 모여 놓고 있었다. 물어보니 ‘저거 재미없어요 여기서 노는게 더 재미있어요’라고 하더라. 아차 싶었다. 아이들을 놀이터에 오게 하는 건 빈 공간과 다른 아이들이지 놀이기구가 아님을 어른들은 잊고 있었던 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놀이터가 재미없다 보니 아이들이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싼 놀이기구를 들여 놓고 아파트 안에서도 폐쇄회로tv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정작 아이들은 없고 고양이만 오가는 게 지금의 놀이터이다.
새로운 놀이터의 핵심은 아이들이 직접 만드는 놀이터였다. 동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직접 놀이터를 설계하도록 했다. 디자이너 스쿨에 모인 아이들이 1년 넘게 내놓은 아이디어를 거의 대부분 반영했다. 부모들과 이웃 주민들도 참여하도록 했더니 모두가 만족스러운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 오면 친구가 있어서요."
"다른 곳에서는 다 하지 말라는 말 뿐인데 여기서는 뭐든 할 수 있어서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뭐든 옮길 수 있고 망가뜨릴 수도 있다. 아이들이 집에서 짜증을 덜 내기 때문에 부모들도 좋아한다. 실컷 놀고 들어가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의 체력이 좋아지니 부모들이 흡족해한다. 그리고 같이 노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서로 봐주면서 엄마들도 여유로워지고, 이웃간의 커뮤니티도 복원됐다.
놀이터 설계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로, 환경을 감안해서 현장 상황에 맞는 각각의 놀이터를 꾸며야한다.
둘째로, 학생들의 참여가 필수다.
놀이터의 또 다른 장점은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몸소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학교 학습만으로는 민주시민이 되기 어렵다. 놀이터는 이를 훌륭히 보완해줄 수 있다. 각자 주인이 돼서 생각이 다른 아이들과 만나 부딪히고 갈등을 빚으며 자연스레 관계를 익히고 조율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놀이터는 실제 삶을 배우는 곳이자 도시 속 아이들의 마지막 차크라인 셈이다.
새도 두 날개로 날 듯이 아이들도 공부 말고 자유와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교육을 왜 하느냐, 균형 잡힌 아이로 키우려는 것 아니냐. 언제까지 방에서 게임만 하게 놔둘 건가. 아이들에겐 놀이가 밥이다.
어른의 시각에서 놀이터를 만들면 그것은 ‘놀이터 토건’에서 그치고 만다.
그렇게 서울시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바로 '창의적 놀이터'를 찾아가기 위해서 운동화끈을 질끈 묶고, 교통카드를 들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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