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고 2주가 지났다.

병원에 가서 실밥을 푸르고, 엑스레이를 찍고 경과를 확인했다.

근육이 쭉쭉 빠지는 오른쪽 다리

지난 2주 동안 머리가 참 많이 복잡했다.

수 많은 십자인대 수술 후기를 찾아보고 재활 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면서 머리속으로 수 십 아니 수 백번씩 어쩌면 수 천번씩 달리는 상상을 했다.

목발 없이 걷는 모습을 간절히 그리고 있엇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느리다.

당장에 실린더를 빼고, 보조기를 차고 걷고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우선은 완전히 펴지지 않는 무릎을 펴는데 집중하고,

허벅지의 힘으로 다리를 올리는 연습을 하면서 사라지는 근육을 다시 살리는데 집중하라고 한다.

 

수술을 하고 지난 사고를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이럴 때마다 그 시간을 돌리고 싶다.

 

사고나기 바로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다.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걷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다.

맘껏 달리고 맘껏 운동하며 땀흘리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다시 두 다리로 걸을 상황은 찾아올 것이다.

다시 맘껏 달리고 맘껏 운동하며 땀흘리는 날들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몸과 마음의 속력은 다르지만, 목적지가 같으니

결국은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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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을 했다.

의사선생님이 생각보다 진행속도가 빨라서 좋다고 했다.

그동안 쌓아놓은 운동의 결과물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퇴원을 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작은 병원 침대에서 익숙한 내 방 침대로 옮겨졌다.

퇴원 마중 나온 지율이

 

병원이랑 집이랑 가장 큰 차이는 집은 익숙하고 편안하고 부드럽다는거

어차피 병원이나 집이나 누워있으면서 일하는건 똑같으니 이왕 쉬는 거 집에서 쉬는게 더 좋겠다 싶었다. 

 

아직까지 밤에 무릎이 욱신거리는 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잠깐만 이를 악물면 참을 수 있는 고통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토요일,

기존에 기획단으로 참여한 사업이 진행되는 날이다. 

하루 전 날 미리 수원에 넘어와서 푹 쉬고 행사장으로 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호텔에서도 일하는 삶

 

 

일을 할 수 있다는게 감사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다. 

 

경기도사회적경제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워크숍

뭐 이름이 거창하지만, 소셜벤처 기업들과 기업들의 ESG 분야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만들어가는 행사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반 년 동안 만들어본다고 열심히 까불다가 기획한 사업이다.

 

소셜벤처라 현수막도 재사용 현수막

 

사회자 후

 

머리속으로는 소셜벤처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들지만 

새로운 모델을 통해서 상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는다.

 

약 3주 만에 신어보는 쪼리가 아닌 신발과 슬랙스와 셔츠

깔끔하게 차려입고 포인트는 깁스 

 

 

약 4시간 동안 행사를 진행하고 결국은 쉬는시간에 편의점에 달려가서 얼음컵을 사서 아이싱 앤딩

그래도 나를 찾아주는 곳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같이 사업에 참여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다.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내 가치를 계속 높일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더 신나게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아이싱 앤딩

 

마음만큼 몸이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더 크게 잡고 조금이라도 더 가봐야겠다.

 

Posted by 산산무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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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치고, 다시 X-ray를 찍고 수술 경과 설명을 들으며

'수술은 정말 잘 끝났어요, 뼈 부러진 것도 깔끔하게 부러져서 잘 붙였어요'

이 말을 듣고 그동안 머리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잡념들이 잠깐은 정리가 되었다.

 

아이언맨 다리

다리에 커다란 나사가 2개 작은 나사가 2개 아주 이쁘게 박혀있다.

 

이제는 수술은 잘 끝났으니 시간과의 싸움이다.

뼈가 붙기까지의 시간, 타건이 내 몸과 합체하는 시간 그리고 다시 운동 능력을 찾기까지 재활의 시간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면 참 빠르게 움직였던 것 같다.

스스로 속도가 참 늦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는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줄일 수 있는 것들을 줄이며 살았다.

 

잠을 줄이고, 이동시간을 줄이고, 이동 중에도 뭔가를 하기위해서 때로는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던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긴 시간은 참 좋으면서도 답답했다.

지금까지의 일상은 새벽 운동 출근 일 퇴근 저녁 운동 집 이런 단순한 루틴 속에서 반복되는 삶이었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드레싱 하는 시간, 주사 맞는 시간, 진료 받는 시간을 제외하곤 작은 침대 위에서 모든걸 해결하는 삶이다.

 

작은 나만의 공간

 

운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을 다른 것들로 치환하는게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일에 집중하게 되고, 책을 보게 된다.

하지만 뭔가에 집중 할 만 하면 다리에서 나를 막 부른다. 

 

혼자 커튼친 침대에 누워있으면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운동하고 싶은 생각,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 생각, 씻고 싶은 생각

참 별거 아닌 일상인데 그런 일상들이 그리워진다. 

 

재활이 끝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면 지금 느끼는 이 일상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잊고

또 출근하기 싫고, 운동하기 싫고 그런 감정이 생길 것이다. 분명히

그렇기에 이렇게 기록을 해놓는다.

 

 

4일 만에 머리 감고 행복한 모습

 

내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그 일상이 지금이라고 

Posted by 산산무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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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형 덕분에 편하게 병원을 왔고, 참 순수하게도 병원 입원해 있는 기간동안 책을 읽으려고 책을 두 권 가져왔다.

그리고 일을 하기위해서 노트북도 가져왔다. 

 

그리고 수술 후 이틀 동안은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살면서 한 가장 큰 수술 중 하나였다.

 

수술전 검사를 하고,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했다.

척추 마취를 할거고, 수면 마취를 진행한다고 했다. 

 

마취부터 걱정이 가득했다. 척추 마취를 하고 마취가 안돌아오는 말도 안되는 상상, 수면 마취에서 못깨어나는 상상 

말도 안되는 극한의 상황들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다리에 드레싱을 하고,

척추 마취를 했다.

새우자세를 취하고, 척추에 주사바늘이 들어왔다.

정말, 끔직한 경험이다. 주사바늘을 통해서 주사액이 들어오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역겨운 경험이었다. 

서서히 다리가 따뜻해지고, 다리에 감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배에도 감각이 사라지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러자 산소 마스크를 씌워줬고, 수면 마취가 들어간다고 했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수면 마취를 할 때 지나온 삶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고 그러던데

무슨 '숨 크게 쉬세요' 그리고 눈을 뜨니 병실에 누워 있었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면서 말도 안되는 상상은 말도 안되는 상상이 되었고,

고통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왼쪽 발의 마취가 먼저 풀리고, 오른쪽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마취가 풀리면서 내가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명확하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무릎 위에 숯덩이를 올려놓고 있고, 무릎 옆을 칼로 찌르고, 드릴과 망치로 뼈를 부시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파서 울어봤고, 아파서 울다가 지쳐서 잠들고 아파서 잠에서 깼다.

그렇게 수술 첫날 밤이 지나갔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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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광복절

직장인이라면 15일은 쉬는 날이니 전날 신나게 놀고 푹 쉬기 마땅한 날,

작년의 나는 여의도공원 부터 시청광장 까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8.15km를 달리며 광복절을 기념했다. 

서울의 러닝크루들과 함께 달린 8.15km

 

분명 저번주만 해도 어김 없이 나는 14일에 약속이 있었고, 15일에는 8.15km를 달리고 쉴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쳐맞기 전에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던가

 

나의 계획은 꿈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서 5일째 집에만 있었고, 하루에 1만 보는 기본으로 걷던 사람이 하루에 1천 보도 걷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중에 같이 운동하는 바보형들 덕분에 캠핑장을 가게 됐다.

 

전날 퇴사하고 아침에 직접 집 앞 까지 데리러 온 형,

무려 3시간 반을 운전해서 캠핑장 까지 데려다준 멋쟁이 노예형...자유를 축하드립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땐 다들 와계셨고 첫 인사는 

역시나 욕이었다.

 

다친걸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는 욕으로 시작해서 조심좀 하지 라는 걱정 섞인 욕들

그런데 그런 욕들 마저도 참 좋았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좋았고, 답답할 때 꺼내주는 형들이 있어서 좋았다.

가자마자 식폭행을 당하고 집에서 있던 4일 동안 먹은 밥 보다 더 많은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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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면 7봉...
햇감자로 만든 포카칩 파란색

 

밥을 먹고 형들은 계곡에 들어가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햇살을 맞으며 잠깐의 여유를 느꼈다.

흐르는 계곡 소리,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자갈 밟는 소리 그리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가는 소리들

그런 백색소음들 속에서 내 안의 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들 투성이다.

사고가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쨋든 다리가 붙어있고

아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걸어다닐 거고

상황이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어지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들도 잘 해내고 있다.

 

침대에 누워서 호흡기를 낀 채 눈만 뜨고 있는게 아니라 그래도 나와서 일상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또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흔들리고,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겠지만 

오늘을 기억하며, 오늘 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기억해봐야겠다.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Posted by 산산무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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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글쓰며 놀기 2024. 8. 14. 20:44

"김첨지는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평소와 다르게 손님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랜만에 넉넉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상쾌하여,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모든 행운이 불길한 징조처럼 다가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평소보다 잠을 잘 잤고, 평소보다 운동이 너무 잘 됐고, 회사에서 일도 너무 잘 됐다 심지어 퇴근 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미팅조차도 너무 좋았다. 김첨지와는 다르게 나는 이 모든 행운들이 앞으로의 나의 일기장을 채우는 좋은 소재들이라고만 생각했지 이상한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무릎뼈가 부러졌고,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지금 까지 운동을 하면서 참 많이 다쳤다. 목이랑 허리를 빼고는 모두 부러져봤고, 모두 깁스도 해봤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가 큰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은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야 몸이 가벼워지고 있는데, 이제야 운동 퍼포먼스가 좋아지고 있는데, 이제야 뭔가 기회가 생기는거 같았는데.

바닷가에서 견고하게 쌓고 있던 모래성의 마지막 부분과 깃발을 꽂으면 되는데 갑자기 쓸려온 파도에 모래성 모두가 무너진 기분이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찾아와 내 머리를 헤집고, 내 마음을 마음껏 뒤집어놓고 사라진다. 

 

 어떻게든 정신을 다른곳에 쏟고자 일도 열심히 하고 있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도 읽고 있고, 보고 싶었던 영화들도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잘 가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면 운동하는 사람들의 운동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게시글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어려워진다. 

 

 지금 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해보고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는다. 앞으로 수술 이야기, 입원 이야기, 회복과 재활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모든 이야기들을 적을 것이다.

 

 언젠가 내 삶에서 권태기가 찾아올 것이고, 언젠가 또 알 수 없는 현타가 찾아오며 나의 의욕을 모두 꺾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불평 불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삶에서 감사함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올 것 이다. 

그때 이 글을 꺼내서 읽을 예정이다.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마운 사람들, 참 많이 좋아하는 사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산산무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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